얼마 전 영국 에너지부 장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한 발언이 화제가 됐어요. “우리는 더 이상 대형 원전을 짓는 데 20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말이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그가 꺼내 든 카드가 바로 SMR(Small Modular Reactor, 소형모듈원자로)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에너지부(DOE)는 텍사스와 와이오밍 두 곳에 SMR 시범 부지를 공식 확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죠. 2026년 현재, 원자력 에너지는 ‘낡은 기술’이라는 오명을 벗고 기후 위기 시대의 핵심 해법으로 빠르게 복권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미국과 영국이 각각 어떤 SMR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어떤 논리와 현실이 숨어 있는지 함께 살펴보려 해요.

📊 SMR이란 무엇인가 — 숫자로 먼저 이해하기
SMR은 전기 출력 기준 300MWe 이하의 원자로를 의미해요. 기존 대형 원전(1,000~1,600MWe)과 비교하면 규모가 훨씬 작고, 공장에서 모듈 단위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라 건설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 건설 기간: 대형 원전은 평균 15~20년 / SMR은 5~7년 목표
- 초기 투자비: 대형 원전 1기당 약 100억~200억 달러 / SMR은 10억~30억 달러 수준
- 탄소 배출: 생애주기 기준 1kWh당 약 12g CO₂ — 태양광(45g), 풍력(11g)과 비슷한 초저탄소 전원
- 용량 계수(Capacity Factor): 90% 이상 — 태양광(25%)·풍력(35%)에 비해 압도적으로 안정적
특히 마지막 항목인 ‘용량 계수’가 핵심이에요.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출력이 들쑥날쑥하지만, SMR은 24시간 365일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베이스로드(Baseload) 전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봅니다.
🇺🇸 미국의 SMR 정책: IRA에서 ADVANCE법까지
미국은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공식 인정하고, 기존 원전 유지 및 신규 건설에 대한 세금공제(PTC) 혜택을 대폭 확대했어요. 이후 2024년 통과된 ADVANCE(Accelerating Deployment of Versatile, Advanced Nuclear for Clean Energy)법은 2026년 현재까지도 SMR 상용화의 법적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눈에 띄는 움직임들을 살펴보면요:
- 테라파워(TerraPower): 빌 게이츠가 투자한 회사로, 와이오밍주 케머러(Kemmerer)에 나트륨(Natrium) 냉각 SMR 건설 중. 2030년 상업 운전 목표
- 뉴스케일 파워(NuScale Power): 세계 최초로 NRC(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설계 인증을 받은 SMR. 다만 2023년 아이다호 프로젝트가 비용 문제로 취소된 이후 국제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중
- 카이로스 파워(Kairos Power): DOE 지원을 받아 테네시주에 실증로(Hermes) 건설 진행 중 — 2026년 현재 콘크리트 타설 단계
- AI 데이터센터 연계 수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가 SMR 전력 구매 계약(PPA)을 앞다퉈 체결 중 — AI 인프라 전력 수요가 SMR 시장을 실질적으로 견인하는 구조
특히 마지막 포인트가 흥미로운데요. SMR의 상용화를 가속화시키는 ‘예상치 못한 조력자’가 바로 AI 데이터센터 수요라고 봅니다. 안정적이고 탄소중립적인 전력을 대량으로 원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SMR의 첫 번째 주요 고객이 되고 있는 셈이에요.
🇬🇧 영국의 SMR 정책: 롤스로이스 SMR과 GBN의 야망
영국은 어쩌면 미국보다 더 절박한 사정이 있어요. 노후 원전 폐쇄가 줄줄이 예정된 데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자국 내 안정적 전원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정부는 2026년 현재 두 트랙으로 원자력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대형 원전 트랙: 그레이트 브리튼 뉴클리어(GBN)가 힝클리 포인트 C(3.2GWe, EPR 방식) 완공 추진 및 웰스(Wylfa) 신규 부지 검토 진행
- SMR 트랙: 롤스로이스 SMR 컨소시엄이 핵심 주체. 470MWe급(엄밀히는 대형 SMR 경계선) 모듈식 원전을 2035년까지 영국 내 최소 5기 건설 목표
롤스로이스 SMR은 영국 원자력규제청(ONR)의 일반 설계 평가(GDA)를 진행 중이며, 2026년 초 기준으로 2단계 심사가 완료된 상태라고 알려져 있어요. 영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약 2억 1,000만 파운드의 공공 투자를 이미 집행했고, 체코·캐나다·폴란드 등 해외 수출도 적극 타진하고 있습니다.

🔍 미국과 영국 정책의 공통점과 차이점
두 나라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패턴이 보여요.
공통점:
- 정부 보조금과 민간 투자를 동시에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파이낸싱’ 모델 채택
- 원자력을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 수단으로 명시적으로 인정
- 규제 간소화 및 인허가 기간 단축을 위한 입법 조치 병행
차이점:
- 미국은 민간 주도(테라파워, 카이로스 등 스타트업 중심), 영국은 정부-산업 합작(롤스로이스 컨소시엄 중심)
- 미국은 다양한 냉각재 기술(나트륨, 용융염, 고온가스 등) 복수 트랙, 영국은 경수로(PWR) 기반 단일 표준화 노선
- 영국은 수출 산업으로서의 SMR을 강하게 의식, 미국은 내수 에너지 안보에 더 방점
💡 현실적으로 남아 있는 과제들
밝은 면만 보면 안 되겠죠. SMR이 해결해야 할 숙제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고 봐요.
- 비용의 불확실성: ‘공장 대량생산으로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는 아직 실증된 적 없어요. 첫 번째와 두 번째 호기에서 얼마나 학습 효과가 나타날지가 관건입니다.
- 핵연료 공급망: 일부 4세대 SMR은 HALEU(고농축 저농축 우라늄)를 필요로 하는데, 현재 이 연료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이 지연되고 있어요.
- 사용후핵연료 문제: 어느 나라도 영구 처분장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SMR이 이 근본 문제를 우회할 수는 없어요.
- 사회적 수용성: 부지 선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 반발은 미국이든 영국이든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6년 현재 SMR은 ‘미래의 기술’에서 ‘건설 중인 기술’로 이미 전환 중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여요. 카이로스의 테네시 부지, 테라파워의 와이오밍 부지에서는 실제 삽이 들어갔거나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에디터 코멘트 : SMR을 둘러싼 논의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이것이 ‘원자력이냐 재생에너지냐’의 이분법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실제로 두 나라 모두 재생에너지 확대와 SMR 도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고, SMR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조각’으로 포지셔닝되고 있거든요. 한국 입장에서도 단순히 미국·영국의 행보를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이미 보유한 APR1400 기술력과 두산에너빌리티·한국수력원자력의 역량을 SMR로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인 것 같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빠른 쪽이 시장을 가져가는 게임이기도 하니까요.
태그: [‘SMR’, ‘소형모듈원자로’, ‘미국원자력정책’, ‘영국원자력정책’, ‘에너지전환2026’, ‘테라파워’, ‘롤스로이스SM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