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말,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조용한 충격이 퍼졌습니다. 수년간 ‘차세대 원자력의 희망’으로 불리던 미국 뉴스케일 파워(NuScale Power)의 아이다호 UAMPS 프로젝트가 전격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어요.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에서 소형 모듈 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들에게는 분명 실망스러운 뉴스였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 사건은 SMR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니면 성장통에 불과한 걸까요? 함께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① UAMPS 프로젝트 취소 — 숫자로 보는 원인 분석
뉴스케일의 첫 번째 상업 프로젝트였던 UAMPS(유타 어소시에이티드 뮤니시펄 파워 시스템) 카본 프리 파워 프로젝트(CFPP)는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 77MWe급 모듈 6기, 총 462MWe 규모로 계획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어요.
- 예상 발전 단가(LCOE) 급등: 초기 추산 비용은 MWh당 약 58달러 수준이었으나, 2023년 발표 시점에는 MWh당 89달러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일부 분석에서는 100달러를 초과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어요.
- 참여 지자체 이탈: 프로젝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참여 지자체 최소 가입 용량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최소 100개 이상의 지자체 참여가 필요했으나 비용 우려로 인해 상당수가 계약을 철회했어요.
- 인플레이션 및 공급망 문제: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원자재·인건비 인상이 원자력 프로젝트 원가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뉴스케일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고 봅니다.
- 주가 폭락: 취소 발표 이후 뉴스케일 주가는 하루 만에 약 25% 이상 급락했으며, 2024년에는 나스닥 상장 폐지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핵심은 ‘기술적 가능성’과 ‘경제적 현실성’ 사이의 간극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SMR이 이론적으로 매력적이라는 사실과, 실제로 경쟁력 있는 단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거든요.
② 그럼에도 뉴스케일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이유
흥미로운 점은, UAMPS 프로젝트 취소 이후에도 뉴스케일이 완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일부 방향에서는 전략을 재정비하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어요.

- 루마니아 도이체슈티 프로젝트: 뉴스케일은 루마니아 국영 원자력 기업 뉴클리아렉트로(Nuclearelectrica)와 함께 루마니아 도이체슈티 부지에 462MWe 규모 SMR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미국 국무부 및 수출입은행(EXIM)의 지원을 받으며 지정학적 맥락(탈러시아 에너지 의존)에서 추진력이 있다고 봅니다.
- 폴란드·불가리아·카자흐스탄 등 관심 국가 확대: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SMR 도입 협의가 계속되고 있어요. 특히 러시아산 에너지에서 벗어나려는 정책적 드라이브가 뒷받침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 인증(DC) 승인: 뉴스케일의 VOYGR™ 설계는 2022년 NRC로부터 설계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SMR 최초 사례로, 기술 신뢰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 AI·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의 접점: 2024~2025년 들어 빅테크 기업들이 폭발적인 AI 연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안정적인 탄소 중립 전원으로 SMR을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이 흐름이 뉴스케일에게 새로운 민간 수요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③ 글로벌 SMR 경쟁 구도 속 뉴스케일의 위치
뉴스케일의 고전이 SMR 전체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아요. 경쟁자들은 오히려 발걸음을 빠르게 하고 있습니다.
- 영국 롤스로이스 SMR: 470MWe급 모듈을 목표로 하며, 영국 정부의 지원 아래 입지 선정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대규모 양산 개념을 적용해 비용 절감을 노리고 있어요.
- 캐나다 OPG × GE히타치 BWRX-300: 온타리오 파워 제너레이션이 다링턴 부지에 BWRX-300 도입을 추진 중으로, 2030년대 초 상업 운전을 목표로 합니다. 현재 가장 빠른 트랙 중 하나라고 봐요.
- 한국 KAERI의 i-SMR: 국내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혁신형 SMR(i-SMR)은 170MWe급으로, 2030년대 중반 표준 설계 인가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국내 에너지 전환 정책과 수출 전략 양쪽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④ SMR의 본질적 딜레마 — ‘규모의 경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전통적인 대형 원전(APR1400 기준 1,400MWe)은 규모의 경제 덕분에 단위 발전량 당 비용을 낮춥니다. 반면 SMR은 의도적으로 ‘작게’ 만들면서도 원자로 특유의 복잡한 안전 계통과 인허가 비용은 비례 감소하지 않아요.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상 두 가지입니다.
- 모듈 대량 직렬 생산(공장 제작): 현장 시공 대신 표준화된 공장 제작을 통해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것. 항공기 엔진 제작 방식을 원전에 도입한다는 개념이에요.
- 복수 모듈 동시 배치: 단일 부지에 여러 모듈을 쌓아 사실상 대형 원전에 준하는 총 용량을 확보하는 방식. 뉴스케일의 VOYGR-12(12모듈, 924MWe) 구성이 이 방향입니다.
문제는 이 두 전략 모두 ‘충분한 수주 물량’이 확보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전형적인 딜레마라고 할 수 있어요. 첫 번째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두 번째 수주가 생기고, 수주가 쌓여야 단가가 내려가는 구조인데, 그 첫 번째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게 뉴스케일이 직면한 현실이었습니다.
에디터 코멘트 : 뉴스케일 UAMPS 프로젝트의 취소를 두고 ‘SMR은 실패했다’고 단정 짓기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기술 개발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시장 검증의 실패’에 가깝다고 봐요. 진짜 위험 신호는 경쟁사들마저 비슷한 벽에 부딪히는 상황이 반복될 때일 겁니다. 지금 당장 SMR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뉴스케일 단독보다는 캐나다 BWRX-300나 한국 i-SMR의 진행 상황을 병행해서 추적하는 편이 훨씬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SMR의 시대는 오는 것 같아요, 다만 우리 모두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천천히.
태그: [‘뉴스케일SMR’, ‘소형모듈원자로’, ‘SMR프로젝트’, ‘원자력에너지’, ‘탄소중립에너지’, ‘NuScale’, ‘에너지전환’]